“나보고 유적을 지키란 말인가?”

“물론이지. 지금까지 수많은 왕들의 동반자, 그리고 수많은 역사의 간증인이 된 너에게밖에 이 일을 맡길 수 없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왕들을 잠깐 혼자로 만들 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만.”

“’왕’은 걱정하지 마. 극리에게 무술 훈련 일정을 잡아달라고 부탁해 놨어. 적어도 그 녀석이면 왕을 꼬시려 시도는 한다 해도, 나라를 뒤집어 엎진 않겠지.”

정호는 왕을 꼬신다는 문장에 더욱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다. 갑자기 대뜸 찾아와서는 자신의 사원을 지키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사전 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통보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일은 길고 긴 역사를 통틀어 찾아 보아도 대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무언가 손을 써서라도 막고 싶은 것이 있을 때의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그래서,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가.”

“유적 안의 내용물을 훔쳐본 녀석을 찾아서 혼쭐을 내 줄 거야.”

“…두 번째 태양,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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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는 수많은 세월동안 한리아의 왕을 보조하던 호위무사였고, 그 때문에 두 번째 태양의 이야기는 직접 보고 목격한 바가 있었다. 그에게도 모든 땅이 잿빛이 되어버리고 혈이 낭자했던 그 때의 시기는 다시 한 번 떠올리라고 하면 치가 떨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원인이 되었던 두 번째 태양을 내부자도 아닌, 외부자가 보았다는 것은 당연히 그 무엇과도 견주지 못할 비상 상황이었다.

“그렇게 말한다면야, 두번째 태양으로 가는 문 앞은 내가 지키도록 하지.”

정호는 보수를 이야기하기도 전에 덥석 그 일을 수락했다. 적어도 사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자신 또한 이 일을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만약 두 번째 태양이 한 번 더 폭발해서 왕의 안위가 위험해진다면? 만약 왕은 기적적으로 무사하다 쳐도, 수많은 백성들이 죽고 괴로움에 빠진다면? 왕 자신 또한 고통에 빠질 일이었고, 왕의 입지 또한 위태로워질 것이었다.

“말이 바로 통하네. 적어도 일이 잘 끝난다면, ‘황색’으로서 잘 보답할테니까 조금만 힘 써.”

죽어도 고집을 피우고, 부탁은 잘 하지 않는 것이 제법 그답다고 생각했다. 사곤은 정호의 어깨를 두어번 툭툭 치더니, 바로 허리를 비틀어 방향을 뒤로 바꾸고는 급하게 달려갔다. 아니, 배편을 예약을 해 놨으면 적어도 한참 전에 부탁을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리아와 다른 나라를 잇는 배편은 오시(11시~13시)면 끊길 터인데, 사곤은 갑자기 대뜸 사시(9시~11시)의 막바지에 찾아와 부탁을 하고는 꽁무니를 빼며 도망가는 것이다. 결국 재빠른 새가 날아 도망치고 나서 드넓은 황금빛 신전에 남은 것은 정호뿐이었다.

“그래, 다 좋은데… 말동무가 없다는 건 조금 적적하군.”

그럼에도 영겁의 세월을 기다리는 데에는 도가 터 있었던 정호였다. 정호는 턱을 괴고는, 혹시라도 찾아올 불청객을 기다리기 위해 칼을 손에 쥐고 계단에 걸터앉았다. 신전의 길은 다른 곳이 뚫려 있지 않고, 찾아온 자는 자신을 무조건 마주해야 한다. 한리아 바깥의 사사로운 술수를 쓰는 외부자라면 언제라도 방해자가 될 자신이 있었다.

허점은, 바로 그 침입자가 한리아의 모든 영웅을 꿰고 있는 퇴마사였다는 데에 있었다.


“아니, 여기까지는 웬 일로 오신 거에요? 미리 연락을 해주시지.”